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워디 (문단 편집) === NBA 커리어 === 1980년대에 [[매직 존슨]], [[카림 압둘자바]], [[바이런 스캇]]과 함께 LA 레이커스의 '쇼타임 레이커스'를 이끌었다. 1982년 드래프트 1라운드 1픽(전체 1픽)으로 [[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|LA 레이커스]]에 지명되었다. 1982년에서 1994년까지 NBA에서 12시즌을 뛰어 세 번의 우승(1985, 1987, 1988)과 세 번의 준우승(1983, 1984, 1989)을 이뤘고 일곱 번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ALL-NBA 3rd 팀에 두 번 선정되었다. 별명은 빅 게임 제임스(Big Game James)인데 이는 별명에 걸맞게 큰 경기, 특히 컨퍼런스 파이널이나 파이널에서 맹활약하기로 유명했다.[* 89년에 63승을 기록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역대급 강팀이자 최강의 수비팀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시카고 불스를 제외한 모든 팀을 스윕해버릴 정도였는데, 이때 플레이오프에서 이 팀을 상대로 한번이라도 40점을 넘긴 선수는 마이클 조던과 워디 단 둘 뿐이었다.] 1987-88 시즌에는 생애 유일한 트리플 더블을 파이널 7차전에서 기록하면서 에이스인 매직 존슨을 제치고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. 사실 객관적인 활약상 자체는 워디가 평균 22점-7.4리바운드-4.4어시스트-0.7스틸-0.6블락에 야투율 49.2% 자유투 73.5%, 매직 존슨이 21.1점-5.7리바운드-13어시스트-2스틸-0.1블락에 야투율 55% 자유투 86.6%로 매직에게 뒤진다. 그러나 불과 한 시리즈만으로 수상이 결정되는데다가 투표단의 수가 매우 적은 파이널 MVP는 전체적인 활약보다는 임팩트가 강한 선수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있다. 비슷한 경우가 전체적으로 팀내에서 가장 잘했지만 [[세드릭 맥스웰]]에게 트로피를 내준 1981년의 래리 버드, 2015년에 [[안드레 이궈달라]]에게 트로피를 내준 스테판 커리.[* 그렇다고 이상이 완전히 임팩트 수상은 아니다. 워디는 대패한 4차전에서 7점으로 부진해 평균을 확 깎아먹은 것 뿐이지 시리즈 내내 원투펀치에 걸맞는 활약을 했으며 네 경기에서 팀내 득점 1위를 하며 좋은 활약을 했다. 워디나 이궈달라, 맥스웰처럼 에이스보다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'비벼볼만한' 수준이 되면 임팩트로 뒤집을 수 있는 정도.] 물론 이궈달라, 맥스웰과, 워디 세 선수 모두 "전체 활약을 따지면 에이스보단 못하다" 수준이지 시리즈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수상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다. 워디의 경우 6차전에서 28점,야투율 54.5%로 팀 공격을 이끌었고, 무엇보다 7차전에서 "빅 게임 제임스"답게 36점-16리바운드-10어시스트-2스틸에 아투율 68.3%로 몬스터 게임을 한 것이 수상에 결정적이었다. 당시 피스톤즈의 주전 SF는 [[아드리안 댄틀리]]였고, 피스톤즈는 상황에 따라 파워포워드 존 샐리 (211cm), 백업 스몰 포워드 데니스 로드맨 등을 워디에게 붙혔으나 탱크같은 파워와 뛰어난 운동능력을 지닌 그는 어떤 포워드가 그에게 붙어도 포스트업으로 밀어붙히거나 큰 선수들이 붙으면 페이스업으로 돌파하는 등 막기 힘든 모습을 보였다.[* 이때 초반에 댄틀리가 어느 정도 맞불을 붙히기도 했으나 워디를 상대로 그나마 버텨준 것은 교체투입된 로드맨이었다. 당시 로드맨은 불스 시절에 비하면 훨씬 말랐으나 특유의 강력한 하체 덕분에 그보다 힘이 훨씬 센 워디의 포스트업에 속수무책으로 밀리진 않았다. 이 때 모습 덕분인지 88-89시즌에 로드맨이 훨씬 더 큰 역할을 맡게되고, 적어진 비중에 불만을 표하던 댄틀리는 시즌 도중 트래이드가 된다. 그리고 리벤지 매치가 된 89파이널에서 레이커스는 평균 25.5점을 넣은 워디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출장시간이 준 매직의 공백을 못 이기고 스윕당하고 만다.다만 이때도 그는 최종 4차전에서 40점을 넣으며 체면치레를 했다. 위에 언급됐다시피 막강전력이던 피스톤즈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40점을 넘긴 건 그와 조던 뿐이었다.] 12시즌 동안 평균 득점 17.6점(FG 52.1%), 5.1리바운드, 3.0어시스트, 1.1스틸을 기록했다. 커리어 하이인 1989-90 시즌에는 득점 21.1점(FG 54.8%), 6.0리바운드, 3.6어시스트, 1.2스틸을 기록해 이해에 ALL-NBA 3rd팀에 선정되었다. 별명에 걸맞게 플레이오프에는 통산 9시즌동안 평균 득점 21.1점(FG 54.4%), 5.2리바운드, 3.2어시스트, 1.2스틸로 정규시즌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. 1980년대 LA 레이커스의 [[매직 존슨]]-[[카림 압둘자바]]-제임스 워디의 3인방은 [[보스턴 셀틱스]]의 [[래리 버드]]-[[케빈 맥헤일]]-[[로버트 패리시]]의 3인방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. 이들 6명은 나중에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. 은퇴 후 그의 등번호 42번은 LA 레이커스에서 [[영구결번/스포츠|영구결번]]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